낭보랑 산장 Chalet de Nant Borrant (1459m) -> 발머산장 Reguge de La Balme (1706m) -> 떼뜨 노르 데 푸르 Tete Nord des Fours (2756m) -> 본 옴므 산장 Refuge col de la Bonhomme (2477m)
낭보랑 산장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억지로 입안에 빵을 집어 넣고 비를 뚫고 갈 만반의 준비를 했다. 국내에서도 절대 우중산행을 하지 않는 우리 둘이라 빗속을 헤치고 걸어간다는 게 너무 좌절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힘을 내 보았다.

낭보랑 산장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오르막을 한참을 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심한 경사가 아닌 임도길이라 걷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야생화가 피어있고 소들이 방목되어 평화롭게 풀을 뜯는 산책길을 한참 걷다보면 발머 산장이 나온다. (비가 오고 산장은 문이 닫혀 있어 사진 한 장 없이 지나갔다..ㅜㅜ)
발머산장을 지나며 비가 그치고 하늘이 걷히기 시작했다.

중턱에서 호주인 여자 하이커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처음에 같이 가다가 우리랑 속도가 안 맞았는지 먼저 앞서갔다. 가끔 길 위에 이정표에 적힌 시간이랑 우리가 걷는 시간이랑 너무 안 맞다고 투덜거렸는데 저걸 보니 이정표는 다리 긴 외국인 걸음 속도라며 오빠랑 수긍하고..ㅋㅋㅋ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뚫리면서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몽블랑에서 가장 남성스러움을 볼 수 있는 코스라는 말이 그냥 나온것이 아닌 듯 굵고 장엄한 알프스 산군이 황홀하게 펼쳐졌다.

발머 산장에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한 채가 그림같이 펼쳐졌는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얼마나 이쁜지 사진을 찍느라 속도가 안 났다.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지나고 본격적으로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젠을 챙겨 갔지만 눈이 많이 녹은 상태였어서 굳이 끼지 않고도 원만하게 올라갔다 (사실 꺼내서 착용하기가 귀찮았....🤣)
햇빛은 따스하고 몸에 열이 나서 반팔만 입고 있었는데 눈길을 걸으며 반팔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암반지대와 모래 지대, 만년선 빙하지대가 어우러진 코스는 정말 매력적인 코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은 험해지고 처음에는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던 만년설을 보고 밟는 게 힘들어져 갈때 쯤, 본 옴므Col du Bonhomme (2329m) 고개에 도착했다.


고개의 왼편에 작은 헛간같은 곳이 있었는데 (바람을 피하는 작은 대피소. 처음에 이곳이 winter shelter 인줄 알았다.) 고개 너머에서 불어오는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에 정신을 못차리고 휘청이다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대피소 안에는 벨기에에서 온 청년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본옴므 산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초콜릿도 나누어 주었다.

해발 2000 중반으로 가까워오면서 너무 추워 있는 대로 옷을 껴입은 후 본 옴므 고개에서 마지막 하이라이트 떼뜨 노르 데 푸르 Tete Nord des Fours (2756m)로 다시 출발을 했는데, 오늘 이미 산행시간 12시간을 훌쩍 넘긴 터라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고 길도 너무 험해서 속도가 전혀 나지 않았고 산 잘 타고 체력 좋은 오빠도 비틀거렸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해발 2756m로 일대에서 가장 높다는 떼뜨 노르 데 푸르 Tete Nord des Fours (2756m).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풍경에 감동과 희열에 벅차오르며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눈앞에 황홀하게 펼쳐진 시커먼 바위산들과 대비되듯이 우리가 걷는 길 아래는 새하얀 눈길 절벽이었는데 다리에 힘은 풀렸고 혹시나 삐끗해 떨어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걸었나 드디어 본 옴므 산장이 나왔다.

푸르 고개를 지나오며 멋진 뷰에 너무 좋아서 에너지가 완충되었던 것일까, 너무 힘들어 드디어 정신이 나갔었던 것일까, 본 옴므 산장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내림 막길에서 썰매를 타야겠다며 스틱을 꺼내 짧게 잡아들고 레인커버를 깔고 앉았다.

기가 찬 오빠는 알아서 놀고 들어오라며 카메라를 던져주고 들어갔고 힘든 건 어느새 다 잊은 나는 잠깐 썰매를 탄 후 눈앞의 알프스를 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저 행복했고 이 눈앞의 풍경을 두고 도저히 들어가기가 싫었다.


밖에서 혼자 한참 시간을 보낸 후 들어온 본옴므 산장 (winter shelter).

올라오며 만났던 젊은 호주 여자와 신기하게도 처음 시작점이였던 레즈우슈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저씨가 먼저 도착해 쉬고있었다. 세상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는 듯 인사를 하고 서로 안부를 물은 후 둘러본 본옴므 산장은 그동안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우리에 5성급 무료 호텔이였다!
전기와 가스가 들어오고 물이 펑펑 나왔으며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화로앞에서 몸을 녹이고 빨랫줄에 젖은 옷을 말리고.. 너무 아늑한 분위기와 공간에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밤새 창문을 덜컹거리게 하는 비바람 소리와 새찬 천둥소리는 알프스 산장에서의 하룻밤 감성을 더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고 길고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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